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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하~☆

여기에 와서 맥주 캔을 딴 적이 없었는데, 오랫만에 한 캔 마시니까 기분 좋다. 사실은 간단하게 김치 볶음을 안주로 삼고 있던 참이었다. (김치는 전에 미사키들과 같이 했던 거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냐고? 반달도 보름달도 아닌 어중간한 달빛에 취하려면 역시 다락방만한 곳이 없다. 아직은 예비인 방인지라 대충 먼지만 훔친 정도이지만, 다락방으로 쏟아지는 달빛은 다락을 닦느라 쌓았던 스트레스를 확 날리기에 충분했다. 혼자이긴 하지만 신선놀음에 혼자놀이 따질 필요가 있겠나. 그냥 적절하게 즐기면 되는 거다. 그래도 내일도 가게 일 해야 하니 맥주는 적당히 마셔야지.

한참을 달빛에 취해 안주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마셔대던 와중에, 레온토도 녀석이 알림 메시지를 보내 왔다. 분위기 다 깨고 있다. 뭐여, 이번엔 '사쿠라다 하루카'인가. 그러고 보니 하루카는 카스텔투로 2번 방문객으로 등록되어 있지. 당연히 방문 승인해 줘야지. 상은 도로 1층으로 내려놔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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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의 이름과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사쿠라다 하루카, 이도영 씨 한테서 오늘 만난 미사키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자동응답 기능이 있는 호출기는 곧바로 알림을 보냈다고 나에게 알렸다.

도영 씨를 호출하는 동안,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그리고 같은 이름. 이런 3박자의 우연이 일어날 확률은 기적적으로 낮다. 한 번 만나는 것도 엄청난 우연이지만, 두 번 씩이나 만나다니.

"여어, 하루카. 무슨 일로 왔어?"

약간의 홍조를 띄고 있는 도영 씨가 대문을 열어주면서, 나의 생각은 잠시 정지하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는 도영 씨의 질문이 있었지만, 나는 미사키 때문에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영 씨는 어차피 레온토도(이 집의 경비 시스템)에 다 기록됐다며 어서 들어오라 했다. 약간의 술냄새가 있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그래서, 미사키 때문에 찾아왔단 말이지?"

대충 야채 볶아 놓은 것을 안주 삼았던 모양인 듯하다. 도영 씨의 말로는 '김치'라는 것인데, 요 전에 미사키들이랑 같이 담갔던 거라고. 어찌됐든 도영 씨는 곧바로 김치볶음을 나에게 권해 줬지만, 난 이미 밥을 먹었기에 사양했다.

술이 다 떨어진 모양인지, 상을 치워놓은 도영 씨는 곧바로 나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제는 미사키와 미사키. 두 명의 미사키가 만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먼저 도영 씨한테 물어 보았다.
"야. 아침에도 말했지만, 나한텐 신기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려서 만났던 동네 형의 이름이 자기 이름이랑 같다느니,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배우에 대기업 임원까지도 나온다며 웃어댔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팔자라는 건 이름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이름만으로 팔자가 결정됐다면, 동명인들의 운명은 진작에 다 같았을 것이라는 도영 씨의 첨언. 도영 씨는 그런 운명론에는 질색이라며 스스로의 운명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했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