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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거지.

미사키가 말을 더듬다 못해 이상한 말을 내뱉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말에도 진심은 숨어 있었다. 내가 깔끔하게 한 마디를 던질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는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감정이지. '누구'를, '어느 대상'을 '어떻게' 좋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고. (좋아하는 것도 지나치면 병이라고, 전에 이나리가 그렇게 말했었다.) 사실 나도 하루카 말고는 누구를 어떻게 좋아하는지 정하지 못했거든. 하루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남매 사이인데 벽이 있을 수 밖에 없잖아. 하지만 그 '벽'은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벽이지. 그런 의미에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납득이 되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언니 오빠 동생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평범하긴 해도, 도영 오빠의 말 대로 나 역시 평범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능력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기에, 나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미사키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대체로 비슷하리라 본다.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 느낌이다.

대화가 끝나자 남학생이 온갖 홍보물을 가지고 왔다. 소책자는 물론이고 볼펜에 뱃지까지. 물론 그냥 주는 것도 있었고 기념으로 파는 것도 있었다. 모든 수익은 재단에 기부되니 잘 챙겨두자. 그리고 이제 내가… 아니, 우리가 나설 차례다. 미사키, 준비 됐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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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미사키 님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미사키 님의 능력이 발현되는 그 순간을 처음으로 맨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사키 님을 감싸고 돌던 빛이 사라지자 옆에는 일곱 명의 분신이 등장하였다. 제각기 다른 헤어 스타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여전히 인상깊다.

미사키 님은 곧바로 각 분신들을 소개하려 했지만, 바로 옆의 분신이 곧바로 말렸다. 나오기 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미사키 님은 아랑곳 않고 각 분신들을 소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인지 빤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덕에, 분신들을 구분짓기는 매우 쉬웠다.

"그나저나, 이 애는 누구야?"

'사쿠라다 미사키'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사쿠라다…"
"미사키?"

다들 신기해 하는 눈치이다. 8명의 사쿠라다 미사키에 1명의 사쿠라다 미사키를 더했으니 놀랄만도 하다.

"드디어 '미사키 에이트', 완전체 결성이네♡"
"샤우라! 나는 왜 빼냐고!"

미사키 님은 샤우라의 양볼을 잡아당기며 놀림감이 된 것에 제대로 된 복수를 펼쳤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분신은 의자에 걸터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본체에 딱 걸렸다.

"벨! 너는 또 아침부터 자냐!"

TV에서도 봤듯, 여전히 분신들을 감독하는 미사키 님이시다.

그 이후의 일을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미사키 나이너'(Misaki Niner)는 세 그룹으로 나누어 대대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미사키 님은 1그룹으로 유니코, 라이오와 같이 버스정류장에서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바닥 안내판의 설치를 맡았고, 나는 벨, 부부와 함께 기념품을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한 분은 잠만보에, 또 한 분은 먹보인지라 사실상 내가 거의 모든 기념품을 나눠줬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가 있는 그룹은 3그룹이다.

나머지 세 분, 그러니까 이나리, 샤우라, 레비는 2그룹을 구성하였고, 맞은편의 데스크에 앉아 관객들의 방명록을 관리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외국인도 보였는데, 영어 통역을 맡는 건 이나리의 담당.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어 1그룹이 오면서 우리 3그룹의 일에 합류했다. 미사키 님은 벨과 부부는 여전하다고 했지만, 이내 작은 미소를 짓고서는 곧바로 본연의 일로 돌아갔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 다음주는 생명사랑 밤길걷기에 참가 예정, 목요일 오후 10시에 연재합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