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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검사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다. 마침 월요일이라 비번이었던 나는 폐하와 함께 병원에 다시 찾아갔다. 정말이지 일주일이 너무나도 길었지만, 그 일주일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결과는 지난 금요일에 진작에 나왔다고 메일이 왔지만, 결과를 통보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인지라 일부러 월요일로 늦춘 것이다.

내가 입원할 때에도 난리통이었다는 하루카의 증언이 있었지만, 센터에 들어가는 게 이렇게 엄청나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워낙 중요한 곳이니만큼 경비도 삼엄한지라, 당시 보호자였던 하루카 녀석도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고. 아무튼, 오늘은 폐하와 동행하고 있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입원 때에는 필름이 끊겼다시피 해서 한 번 나갔을 때 알게 된 통로였는데, 그 통로를 통해 다시 들어가는 게 무척이나 새롭다. 방향이 바뀌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보니, 서버실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데이터가 쌓여가고 있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니만큼 환시 같은 건 없다.

한참을 걸어가서 도착한 곳은 검사실 바로 옆에 있는 진찰실. 바로 여기에서 결과를 통보받을 것이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문이 다시금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려나. 지금 당장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문을 열어봤자 보이는 것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병원 진찰실의 모습이다.

의사 분은 폐하를 반갑게 맞이하신다. 의사 분은 나를 공식적으로 처음 보는 것이라 내가 정중하게 인사를 드려야 했다. 인사를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결국 '그 날'이 왔네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특수능력 검사를 시행하게 될 줄이야."

의사 분도 이제는 체념하신 듯 하다. 이미 소와 씨는 물론이고, 폐하에 하루카까지. 숨기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내 능력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생애 처음으로 뇌파검사까지 받았으니,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튼 의사 분은 내 이름이 적힌 파일을 꺼내 천천히 보시더니, 차트를 기록 삼아 나의 능력을 감정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매주 일요일만 되면 유물이나 유품을 감정하는 프로그램을 봤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단골로 깔리던 배경음악이 여기에도 깔리는 느낌이다.

의사 분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보통 특수능력은 왕족이나 귀족에게만 발현되는 능력으로 일반인에게 발현된 건 최초이다. 둘, 센터가 세워지고 그 동안 갖가지 특수능력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 과정에서 분류되었던 어떤 능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셋, 신화나 전설에만 기록되어 있던 능력으로 현대에는 발현된 기록이 없다.

의사 분의 주저리를 듣자 하니, 슬슬 몸이 꼬이기 시작한다. 거두절미하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성미도 급하시네. 바로 알려드립죠."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내 검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다.

"이도영 군의 능력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1초가 1시간 처럼 느껴진다.

"가상의 물체를 현실로 시각화하는 궁극환시(窮極幻視), 얼티밋 비전(Ultimate Vision)임이 밝혀졌습니다."

궁극환시. 얼티밋 비전. 가상의 물체를 현실로 시각화한다.
그 능력이라면….

'아까, 무지개를 보았어요. 구름 위의 무지개 말이에요.'

내가 잠시 고향에 돌아갔을 때, 공항에서 이나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 나는 구름 위에는 물방울이 맺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나리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무지개가 나의 능력을 통해 이나리의 눈에 들어온 것이라면 모든 것이 풀린다.

"아마도 어릴 적에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었고, 알고 있다 해도 제어할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게다가 도영 군은 우리 왕족도 아닌, 순수하게 저의 제안에 응하여 왕궁에 고용된 평민이기도 하고요."

깊게 생각하는 동안 나는 주치의의 말을 흘려버렸고, 그 뒤에 흘러나오는 폐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에 불안정하게나마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추측도 들었다. '환경' 얘기라면 확실히 그러하다. 상주 성하동에 터를 잡았던 카페를 접을 당시만 해도 나는 온갖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불안감도 서서히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참동안 소견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치의의 말이 끊겼다.

"도영 군, 잠시 밖에서 바람 쐬도록."

그리고는 폐하의 요청에 따라, 나는 밖으로 나가 병원 로비까지 걸어갔다. 도보로 10분 거리인데, 동짓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아서 그런지 바람이 차다. 별 수 없이 로비의 의자로 돌아가, 대충 걸터 앉은 채 TV를 경청하고 있었다. 월요일인데다가 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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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군의 능력은 가상의 물체를 현실로 시각화하는 궁극환시(窮極幻視), 얼티밋 비전(Ultimate Vision)임이 밝혀졌습니다."

'얼티밋 비전'이라. 나에게도, 아들·딸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없었던, 전혀 새로운 능력이다. 신화나 전설에만 기록되어 있던 능력, 현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능력이다.

"지금까지는 본인의 능력을 몰라서 무의식중에 나왔겠죠. 유소년기엔 효과가 금방 사라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래도 유소년기엔 능력을 제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리 맏딸 아오이도 중학교 때 까지는 그랬으니까. 게다가 도영 군은 왕가 쪽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외국인이다. 귀족도 아닌 평민 외국인한테 그런 능력이 발현된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다.

"다만, 요즘 들어 그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에 불안정하게나마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능력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키울 수도 있는 것이죠."

훈련을 통해 충분히 키울 수 있다, 어쩌면 지금 회복되어 있는 미사키나 하루카도 훈련을 통해 충분히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하루카한테서 들었지만, 도영 군에게는 특별한 훈련법이 있다. 그렇기에 미사키도 하루카도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런 훈련법이라면,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전에 약속된 대로 주치의의 말이 끊겼다. 도영 군에게는 비밀로 해 둬야 할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도영 군, 잠시 밖으로 나가도록.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