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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가 발생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

도저히 TV 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온갖 잡념이 나를 덮치고 있다. 일단은 내가 처음 알게 된 능력에 집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집중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잘 들리던 TV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나의 능력은 궁극환시, 얼티밋 비전.
에스페란토로는 핀피나 비시오(Finfina Visio).
가상의 것을 현실에 투영하는 능력.

미사키의 분신, 이나리의 말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언이었던 것이다. 지난번에 막힌 듯한 벽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내가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발휘해서 그런 거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보았지만 나에겐 전혀 보이지 않던, 하늘에 떠오른 고래도 그 증거다. 최근 들어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났던 현상은 전부 나의 잠재능력, 그러니까 특수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하필 '나'인 건지 모르겠다. 사쿠라다 가문과는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내가, 왕족도 귀족도 아닌 일개 평민 출신인 내가, 한낱 카페의 점장이자 태스크포스의 팀장이기도 한 내가, 어째서 그런 능력을 갖고 있게 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왜 하필, '나'인 거지?
그리고, 어쩌다 그 능력을 갖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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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군이 진료실을 떠나고, 조금 지나서 다시 의사의 말문이 열렸다. 주치의, 계속 하세요.

"이도영 군은 확실히 가상의 것을 실체화할 수는 있습니다만, 시각적 환각 말고는 다른 능력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도영 군은 '시각'만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도영 군의 능력은 자칫 다른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에, 원활한 제어가 없으면 자칫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어쩌면 충분히 가능하고 말이죠."

뭐라고요? 그 말인 즉슨, 도영 군이 살인마라던가 내란범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겁니까? 자살할 수도 있다고요?

"도영 군이 악마나 다른 것을 환시로 꺼낸다면 그렇게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습관을 고려하자면, 그럴 확률은 매우 낮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지만 일단 고삐가 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될 우려가 있죠."

확률이 매우 낮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불안감에 차마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도영 군은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보통 사람들 보다도 작은 충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가 있어요. 게다가 내재된 스트레스도 이미 임계점 까지 쌓여 있어, 그 스트레스가 표출되는 순간 고삐가 풀리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브레이크 아웃'의 빈도는 물론 그 악영향도 자제 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확률상으로는 매우 낮지만, 일단 폭주가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이도영의 속마음인 것 같다. 그 때 토리야마를 일갈했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도영 군에게는 자폐증과 유사한 스펙트럼의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흔히 말해…."

여기서부터의 일은 그대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도영 군이 무슨 '증상'을 앓고 있는지를 말이지. 그래도 짤막하게 얘기하자면, 보통 사람들에 비해 언어적, 행동적 다양성이 제한된다는 거다. 그만큼 대인관계에서 오해를 낳을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하루카를 회복시키겠답시고 하루카를 시험했을 때, 그 때 내가 고함을 지른 것도 그것 때문이다. 순전히 오해 때문이었고, 그 오해는 하마터먼 도영 군에게 상처를 입힐 뻔 했다.

"변화가 느리거나 도영 군에 우호적인 사회에서는 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온갖 권모술수가 일어나는, 그런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살아남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죠. 전국시대 같았으면 얼마 살지 못하고 그대로 도태됐을 겁니다."

전국시대 같았으면 그대로 토대됐을 것이다…. 그 말인 즉슨, 도영 군은 '서바이벌 게임'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고용인인 나로서, 어떻게든 피고용인이 스스로 목을 매는 일은 막아야 한다. 왕으로서 짊어지는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건대, 적어도 도영 군은 임기응변 하나는 매우 잘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용케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죠."

네? 임기응변? 그리고 기적이라니? 무슨 의미입니까?

"상담 기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한때 서울에서 살았다 하더라고요. 그러다 '큰 일'이 일어나고 나서는 곧바로 시골로 내려갔답니다. 그 '큰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는 끝내 발설하지 않았지만요. 아무튼 시골이라는 환경은 도영 군에게는 제격인 환경입니다. 도시에 비해 변화가 느리고, 사람들도 꽤 우호적이니까요."

도영 군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큰 일을 겪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결국 상주 성하동이라는 시골로 내려간 거다. 그리고 그 곳을 새 터전 삼아 성장한 것이다. 적어도 목을 매다는 것 보다는 낫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다행입니다만, 도영 군에게 '궁극환시'는 매우 큰 축복입니다. 언어로 사실을 전달하려면 상당한 정보 가공을 거쳐야 하는 데다가,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왜곡될 가능성도 높죠. 특히나 같은 증상의 환자들에겐 그런 가공 능력이 부족하기에, 언어로만 정보를 전달하다 보면 반드시 왜곡이 생깁니다. 하지만 도영 군은 '환시'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사실을 전달할 수 있어요. 정보 왜곡도 최소하면서 말이죠. 왕가 자제분들의 능력에 비해서는 소소한 능력이긴 합니다만,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상당히 유용한 능력이 될 것입니다."

소소하지만 매우 유용한 능력이라, 확실히 그런 능력은 우리 왕가에서는 찾을 수 없는 능력이다. 다른 왕가 가문에서도 이러한 일은 찾을 수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는 미쳤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런 능력 발현이 에스페란토 때문은 아닌가 생각했다. 테리토리오 데 레온토도도 그렇고, 레온토도 엔 카스텔투로도 그렇고, 뭔가 관련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혹시나 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에스페란토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도영 군의 선택이니까요."

단칼에 부정당했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