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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끝나고 다시 카스텔투로로 돌아왔다. 레온토도 녀석은 이제 내 인기척만 들려도 알아서 문을 열어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은 불완전한 것 같지만, 확실히 나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겼으려나 하는 망상도 해 본다. 당장 생각나는 건 집사 같은 딱딱한 모습, 하지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드러눕고 보니 내가 입대하기 전에 상담 받았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서울은 내가 살기에는 매우 혹독한 환경이라고, 그리고 성하동으로 내려온 것은 꽤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어서 봐.'
'잊지마. 너에겐 분명 능력이 있어.'

지금까지는 그 능력이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인 줄 알았다. 그 동안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나의 진짜 능력이 정녕 궁극환시(얼티밋 비전)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쌓아왔던 과학 지식을 부정하는 능력이라 혼란스럽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과학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니까.

깊은 생각에 빠질 것만 같았다. 헤어나오기 위해서라도, 나는 무심코 왼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칼라비-야우 공간에 존재할 법한 도형이 왼손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도형은 스스로 움직이고 점차 모양을 바꾸더니, 최종적으로는 정팔면체에서 약간 길쭉해진 형태가 되었다. 내가 그 수정 같은 눈부심에 매혹되던 찰나, 그 눈부심은 눈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나의 '능력'에서 헤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능력에 압도되고만 있었다.
정말로,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잘만 쓰면 괜찮겠지. 일단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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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무이, 아이누어로 신(神) 또는 신령(神靈)
2. 신의 위엄, 신비한 위력

- Teritorio de Leontodo 8장

"궁극의 환시, 감춰진 진실?" (La finfina visio, La kaŝita vero?), 끝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