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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다 네 식구들의 목숨만 소중한 게 아니다. 여기 부상 당한 사람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그런 일념(一念) 하나로, 나는 꺼진 땅 속으로 들어갔다. 2미터 뛰어내리는 것 쯤이야 내 다리가 버틸 수 있다. 용기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나의 의지 뿐이었다.

피가 조금 섞인 웅덩이 속에는 허우적대고 있는 아이도 보였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 치고는 출혈이 심각하다. 어떻게든 빨리 이 땅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아이를 들고 최대한 빠른 경로를 찾아야만 했다. 좋아, 이 경로면 되겠지. 경로를 찾아 이미 준비된 들것에 아이를 실을 수 있었는데.

"사토루!"

방금 구한 아이를 찾는듯한 어머니의 목소리. 아뿔싸, 둘째를 배고 있는 것 같다. 산모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가 걱정이다.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 경사가 가장 완만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땅이 단단해 보이긴 하지만 너무 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내 눈 앞에 형광색의 화살표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살표들은 위험한 곳을 알아서 피해가며 안전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 말인 즉슨, 저 표시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누군가가, 아니, 내가 능력을 발휘한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에 여성 구급대원이 산모에 무사히 접근할 수 있었고, 다른 구급대원이 들것을 가져와 무사히 산모를 실어나를 수 있었다. 화살표 덕에 다른 부상자들도 무사히 구한 것 같으니, 나만 빠져나가면 된다.

겨우 수습된 아비규환에서 막 탈출한 나는 옷을 털고, 구급대가 보관하고 있던 커피 콩과 휴대폰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옷은 많이 찢어져 있어서 더 이상 입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누군가를 무사히 구했다는 성취감 하나만으로 족하다. 지혈 때문에 찢어 준 것 뿐인 데다가, 옷은 집에 많이 있으니 괜찮다. 구급대원은 가까스로 살아난 산모를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아이도 산모도 무사하고, 나머지 부상자들도 신속하게 병원에 이송할 수 있었다고. 갑자기 나타난 화살표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지만,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 화살표는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으니까.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카스텔투로에 있는 녀석이다.
사쿠라다 히카리,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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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카스텔투로에 들어온 지 벌써 30분. 아니, 히카리와 같이 있으니 지금은 셋이다. 원한다면 분신들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히카리가 깰까, 보고 있던 TV도 꺼 두고 있다. 적막이 따로 없다.

그런데 도영 오빠는 언제쯤 오는 건지.

"소용없어. 배터리가 나간 것 같기도 하고."

통화를 시도했던 하루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려도 한 시간을 기다려도, 도영 오빠는 도통 오지 않는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지쳐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 현관 문을 나서려는데

"늦어서 미안. 차가 밀려서."

만신창이가 된 도영 오빠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