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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노' 양. 준비해 주세요."

사쿠라이 루미노(桜井るみの), 나를 부르는 이름이자 나를 가리는 가면의 이름. 동시에 가면을 통해 전하는 나의 아이덴티티이다.

'루미노'라는 이름은 '사쿠라다 로얄 패밀리 마인드 힐링 태스크 포스', '레온토도 엔 카스텔투로'의 팀장인 이도영 씨가 붙인 것이다. 전체 이름은 사치코가 전해주었기에, 이도영 씨가 누군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가면을 준비한 건 간만에 만난 매니저 분의 몫이고.

긴장이 되지 않는다는 건 순 거짓말이겠지. 간만에 무대에 서 보는 것이니까.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아직 활동을 중단하고 있고. 애초에 '사쿠라바 라이토'라는 이름은 이번 합동 라이브에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저 복면의 아이돌 '사쿠라이 루미노'만이 존재할 뿐. 타이틀 곡 작사를 도와주긴 했어도, 앨범에는 여전히 'Lumino'라는 명의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 '사쿠라다 히카리'는 아직 공식적으로 브레이크 아웃 상황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고 해야 되겠지.

여기 공연장에 도착하기 전 부터 가면을 쓰고 있기에, 지금은 많이 답답하다. 점심 끼니도 아무도 모르게 기획사 안에서 해결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가는 내 정체를 들키고 만다. 그러니 저녁 역시 라이브 끝난 뒤에 먹어 둬야지. 물론 지금이라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무대에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목소리 연습해 두고.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백스테이지. 사치코가 다음 무대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이 나.

"라이… 아니, 루미노. 준비 됐지?"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면 큰일난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야 한다. 아무리 사치코가 대답을 요구해도 나는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런 나의 마음은 사치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직전 무대가 끝난 뒤, 사치코는 곧바로 다음 무대를 위해 백스테이지를 나섰다.

매니저 분 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지난 1년 동안 사치코가 한 일들을 말하는 거다. 그 동안 사치코는 나 없이 가사를 써 내려가기 위해 피 나는 노력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오히려 풀리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사치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건 사치코가 없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치코가 최근 깨달은 대로, 혼자만의 노력 만으로는 헛수고였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치코의 무대가 끝나가고 있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례네.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탓에 잔뜩 긴장이 드는 데다가 무대도 어두우니 조심조심….

앗! 넘어졌…다.
잠시 후 스포트라이트가 내 시야를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너무 눈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잠깐, 눈이 부시다고?
내 가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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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히카리 님, 합동 라이브 무대에서 모습 드러내'

뭐? 미사키 님의 동생인 히카리가?

TV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는 노래가 시원찮아서 채널을 돌리고 있던 찰나, 한 예능 프로그램 방송의 절반을 가리는 자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실하게 서치☆라이트의 복귀다.

그 순간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받아보니 크림이다.

'미사키, 서치☆라이트가 돌아왔대!'

크림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내 고막을 진동하고 있다. 안 그래도 나도 지금 속보로 보고 있구만. 그리고 나서는 크림이 지시해 준 대로 채널을 돌렸다. 확실하게, 서치☆라이트가 돌아왔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