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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집사부의 소와 씨는 카페 테리토리오를 위해 친히 알바 모집을 공고하셨다. 보통은 나 혼자서도 괜찮지만, 주말만 되면 미사키가 부러웠다는 식으로 말해서 모집했다나 뭐라나. 기억은 나진 않지만, 바빴던 것은 맞다. 얼마나 바빴냐고? 하루는 커피 볶는 걸 깜빡해서 일찍 문을 닫아야 했으니까, 말 다 한 거다. 자동으로 15분이면 뚝딱인데, 그럴 짬 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였다는 거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먼지 하나 제대로 닦지 않은 것도 그렇고.

아무튼, 졸지에 면접관 둘은 곧바로 네 아가씨를 모셨다. 한 면접관은 진작에 준비해 두고 있었는데, 다른 면접관은 무슨 국정농단이라도 당한 것 마냥 하나도 준비 못하고 이런 꼴이다. 어찌됐든 작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면접관 자격으로 면접에 임했다. (서류철이고 뭐고 없다. 진짜로.) 게다가 남자 하나에 여자 다섯, 거기에 넷은 딱 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외모. 여자 넷이서 날 소 보듯 닭 보듯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심호흡이나 하고, 일단 자기소개부터 받아봐야 되겠다.

"우메하라 아메(梅原 あめ)에요."
"메리 란도(メアリー·蘭堂)입니다!"
"키쿠치 리카(菊地 リカ)입니다."
"타케우치 카노(竹內 花野)이옵니다."

넷이서 절친이라서 그런지 호흡이 척척이다. 대충 흘려들은 나는 곧바로 소와 씨가 즉석으로 인쇄한 알바 공고를 꼼꼼하게 읽어보기 시작했다. 공고에 따르면, 성별 무관에 경력 무관. 대신 미성년자 및 사쿠라바 라이토는 지원 금지란다. (히카리는 애초에 신의 손 능력자라서 이해는 되는데, 앞뒤의 별 표시는 왜 굳이 하신 건지.) 복리 후생이야 웬만한 회사들이 하는 기본은 다 갖추고 있고. 미성년자는 금지이니까 나이를 물어보긴 해야 되겠다.

"저는 22살이에요."
"22세입니다!"
"저도 스물 둘입니다."
"스물 두살이옵니다."

전원 스물 두살, 이 정도면 기본 평가는 합격이다. 다음은 소와 씨 차례. 소와 씨는 첫번째 여자인 우메하라에게 바리스타 경력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우메하라의 경력은 1년. 란도의 경력도 1년이다. 키쿠치도 타케우치도 마찬가지. 사실은 한 날 한 시에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단다. 도원결의인가, 이거.

잠깐만, 아까 이름이 뭐라 했지? 우메하라 아메, 메리 란도, 키쿠치 리카, 타케우치 카노… 맞지? 오케이. 이름 다시 확인했고. 응? 아메, 메리, 리카… 카노…… 그 순간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소와 씨의 뇌리에도 동시에 스쳐간 모양이다. 설마.

아메리카노?

그러자 복숭아 밭 대신 커피 밭에서, 칼 대신 커피로 의자매 결의를 맺었을 사총사는 환하게 한 번 더 웃었다. 순간 또 다시 내 눈에만 보이는 후광. 아, 또 다시 녹아들 것 같다. 아몰랑. 오늘만큼은 그냥 드러누워야 되겠다. 궁극환시[Finfina Visio]가 발동한 탓인지, 소와 씨가 능력 함부로 쓰지 말라며 주의를 주는 것 같지만. 죄송합니다, 저는 트랜스(trance) 상태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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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도영 씨는 못 말린다니까.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기절도 하고 말이지. 딱 봐도 저 여자들 때문에 기절한 게 확연히 보인다. 이마에도 떡하니 '잠시 잘게요'이라고 적혀 있으니 말이지. 혹시나 해서 네 여자들을 봤는데, 역시나 다들 당황한 듯한 눈으로 쓰러진 면접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여기 쓰러진 사람은 놔두고요. 네 분, 계속하세요. 그나저나,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되죠?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늘 그렇다. 각자가 할 줄 아는 특기라거나, 사는 위치. 그런 기본 정보 말하는 거다. 공고에서도 얘기했듯이 교통비 별도 지급이라 써 있고, 특기는 당연히 적시적재에 필요한 거니까. 그런데 사는 위치는 딱히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넷이서 같이 산다 했으니까. 집에서도 가까우니 출퇴근 할 때 태워 주면 될 것 같고, 혹시 모르니까 카드도 지급해 줘야지.

아무튼 잘하는 것은 밝은 미소의 아메가 블렌딩, 힘 좀 쓰는 메리는 우유 거품, 깐깐한 리카는 베이커리, 섬세한 카노는 라떼 아트. 각자 역할이 다르니 도영 씨 한테 얘기해 둬야 되겠다. 물론 리카 덕에 쿠키도 같이 팔 수 있게 되고 말이지.

그렇게 한동안 네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마지막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여기 아르바이트를 지원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우리는, 아메리카노가 좋으니까요."

단결이라도 한 듯 넷이서 같은 답을 말했다. 그것도 동시에. 이 정도면 그냥 내일부터 출근시켜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짧은 건지 긴 건지 알 수 없던 면접이 끝나고서는 다시 한 번 도영 씨를 바라보았다. 아예 잠이 들었나보다. 별 수 없지만, 네 분이서 도와줘야 할 것 같네요.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