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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흣.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하여튼, 내일부터 같이 일하게 됐어.

테리토리오에 들어오게 된 4명의 아르바이트생 얘기를 들은 라이오가 간만에 박장대소를 했다. 옆에 있던 유니코 역시 배꼽을 잡고 웃어대기 바쁘다. 그렇게 너무 대놓고 웃지 마라. 민망한 꼴 다 보일라. 아무튼 내가 투덜대는 투로 긍정했더니 이나리가 바톤을 이어 받는다.

"바텐더 경력은 몇년 됐대요?"

'바텐더'라니, 바.리.스.타! 아무튼 경력은 모두 1년 씩이라더라. 잘 하는 것도 제각각이고. 그것 때문인지 소와 씨는 한방에 오케이 하셨더라. 그 때 나더러 뭐했었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나는 그 때 곯아 떨어져 있었으니 모든 일은 집사부장의 결정으로 이뤄진 거지.

그러자 이번엔 레비가 투덜거리는 투로 진짜로 면접관으로서 한 게 없냐고 물어댄다. 말도 마라. 순간 현기증인지 뭔지 와서 쓰러졌단 말이지. 게다가 소와 씨 증언으로는 이마에 대놓고 잠시 자겠다는 표시가 드러났대. 야, 내 능력이 그 정도일 줄은 상상이나 했겠어? 아무튼 깨어 보니까 전에 테리토리오 얘기했던 그 손님방이었지 뭐야. 하여간 이불 한 번 제대로 차고 싶다니까.

아무튼 해는 떨어진 지 꽤 됐겠다, 시계는 슬슬 9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미사키(들)에게는 슬슬 잘 시간이 되어간다. 물론 나도 자야지. 갑자기 애들이 와서 이게 뭐람. 그나저나 하루카는?

"하루카는 지금쯤 청소 끝냈을 거에요."

알겠습니다. 프라울리노(fraŭlino) 미사키(본체). 그러고 보니 히카리는 시즌이 시즌이다보니 엄청 바쁘겠고. 안 그래도 앨범 발매도 있겠다, 크리스마스에 연말연시 행사도 있겠다. 그래도 10시 땡 하면 오는 거 맞지?

하여튼 그렇게 미사키 애들을 보내고, 컵이나 닦아야 되겠다. 나 혼자 있으면 보통 컵 3개 이상은 안 꺼내는데, 손님 수가 많다 보니 10개는 기본으로 비축해야 한다. 게다가 왕가 아씨이다 보니 대충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내일부턴 더 이상 혼자 테리토리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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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미사키 언니."

와 있었네, 히카리. 오늘도 많이 바빴지? 그나저나 아빠하고 엄마는? 오늘도 야근? 하긴. 연말이고 하니 많이 바쁘시지. 벌써 며칠 째람, 하도 심심해서 카스텔투로에 놀러 가는 것도 그렇고. 아차, 카스텔투로는 어딘지 알지?

"당연히 알지."

하긴. 사치코를 만나고서는 갑자기 회복되어 가지고 팔팔하단 말이지. 이 언니는 세 살 늙어서 히카리 처럼 되기 어렵습니다 그려. 아무튼 내일은 오후 늦게 임원 전체 회의가 있으니까 미리 자 둬야 되겠다. 그나저나 하루카는?

"시험 공부 하고 있어."

그냥 유급해도 괜찮겠다 싶은 하루카이지만, 걔는 굳이 나랑 같이 있어야 한다고 으르렁 댔으니 말이지. 왕위를 차지하진 못했어도 나 만큼은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자기가 무슨 나이트(knight)가 되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만 늘어놓아서 말이지. 하는 수 없이 '편입 시험'이라는 말로 퉁 쳤지만.

"그런데 진짜 있더라. 편입 시험."

진짜냐!! 출처는?!

"카스텔투로."

도 영 오 빠! 나는 분명 농담으로 했단 말이라고요! 이 사람이 진짜 눈치도 없어! 그 사실에 나의 유니코 도(度)는 상승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지, 이틀 내내 유니코 모드로 있었는데. 게다가 하루카 일은 하루카가 스스로 책임 져야 하고. 아무튼, 간만에 벨 모드로 전환!

그렇게 내 방에 들어선 나는 하루카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하루카, 정말로 공부하고 있어?

"응. 앞으로도 너의 '보디 가드'가 되고 싶거든."

손발이 오글거리는 멘트를 내뱉은 하루카. 그런 하루카를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해 주고 싶다. 분신들의 마음도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 말이지.

아무튼 보난 녹톤(Bonan nokton), 잘 자.
하루카의 '보난 녹톤'을 듣고 나서, 나는 머지 않아 벨과 함께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 fraŭlino[프라울리:노] : <명사> 아씨, 아가씨[미혼 여성] (← fraŭlo[프라:울로] : 총각[미혼 남성], 미혼인 사람)
※ Bonan nokton[보:난 녹톤] : <문장, 관용구> 잘 자.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