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2일차, 6월 25일 월요일 - 여주~문경]


 아침 여덟 시, 여주시청 앞. 헤어지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마주보았다. O는 결국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여행을 그만두기로 했다. 뭔가 내가 이 놈을 아프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3렙 배낭과 칼치기의 위협이 더는 없을 거라는 위안도 들어 더 찝찝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건 원래 둘의 계획에 딱 맞춰 가져왔던 돈이 다시 나 하나의 여행이 되면서 부족한 돈이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O에게서 십만 원을 빌렸다. 아는 형과 아는 동생은 그렇게 채무자와 채권자가 되고 말았다. 

아이 슬퍼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어떻게 싣는지 등을 대충 일러준 후 페달을 재촉했다. 귀찮아서 폰박물관을 제끼고 얼마 안 되어 빠르게 강천보에 도착했다. 솔로몬 뺨치는 판단력으로 만든 정신나간 내리막길 설명은 생략한다.

 어제까지는 O와 함께 수첩에 도장을 찍었지만, 이 날부터는 굳이 찍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인증은 이미 한 번 받았으니까... 허비할 시간도 살찐 몸 덕에 없어지고 있으니.

이 날 유독 일반도로를 경유하는 구간이 많은데, 비내섬까지 가는 도중 또 길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네 번 여행을 해도 네 번 다 길을 잃는 지 알 수가 없다. 병신같은 길 참

유독 작년에 비해 길 안내판이 낡아 떨어진 게 많아진 듯 하다. 하여간 다행히도 원래 경로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경로도 찾은 겸 딱 거기 있는 쉼터에서 음료수를 좀 샀다. 딱 봐도 망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NjEyuPo.jpg

eNR4Ryt.jpg

fRZYFiJ.jpg

2IWkzhH.jpg


 비내섬으로 가는 갈림길, 작년처럼 병신같이 "완만한 경사"를 선택하지 않는 데 앞서 우물에 들렀다. 섬개우물인지 뭔지... 자랑스럽게 뭘 어찌 복원해놨다고 써 놨는데, 복원만 열심히 해 놓고 관리하는 건 까먹은 모양이다. 잔에 얽혀있는 거미줄과 물에 떠 있는 벌레들의 시체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지었다. 역시 물은 사 먹어야 제 맛... 잔으로 죽은 벌을 건져 버리고 몸만 대충 씻은 뒤 길을 나섰다.

 길이 좀 좆 같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비내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엔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 한 곳 밖에 안 남은 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유독 특이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막걸리를 하나씩 손에 쥔 사람들과 마주쳤다...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던 것 같다. 

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충주에 두 시쯤 도착했다. 여기서 밥을 먹고 쉬었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다시 페달을 밟는데, 생각보다 허리가 아프지 않음을 느꼈다. 음, 뭐지? 그 동안은 여행하는 내내 허리가 아팠었는데. 그나저나 작년에 얼기설기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았던 '충주 라이트월드'가 다 완성된 듯한 모습으로 있었다. 음, 밤에 봤으면 참 예쁠 것 같이 생겼는데. 다만 그 주변에 임시로 "안전주의" 리본을 얼기설기 둘러 놓고 입장은 제발 입구로 해 달라는 A4용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점이 좀 보기 그랬다. 나중에 울타리만 잘 만들면 굉장히 좋은 볼 거리가 될 것 같다.

 탄금대에서 문경으로 가는 길의 하방교가 공사중이었는데, 우회로 안내가 잘 되어 있어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수안보로 가는 길, 또... 길을 잃을 뻔 했다. 작년엔 길에 뜬금없이 쓰레기를 잔뜩 쌓아놨더니, 올해는 아예 공사 중이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우회해 다행히 원래 루트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수안보에 도착하기 직전,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 외로운 사우나모텔 하나에 잠시 앉아서 쉬었는데, 자판기 위에 있는 스피커로 트는 음악의 센스가 괴악하기 그지없었다. 스피커로 독도는 우리 땅이 1절부터 4절까지 전부 나오는 순간, 결국 나는 힘 빠진 다리를 이끌고 페달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고통 끝에 수안보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이 다섯 시 반, 작년하고 똑같다. 작년하고 똑같다...? 분명 30킬로 늦게 더 일찍 출발했는데... 역시 thiccboi™가 되니 많이 달라졌다. 진짜 살 빼야지... 늑장을 부렸다가는 밤에 위험해질 수가 있어 쉼을 마다하고 소조령을 오르기로 했다. 늘 그랬지만 옆의 착시현상 울타리가 마음에 안 든다... 


VR9kIKN.jpg


 차라리 이화령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기적으로 표시라도 돼 있지, 소조령은 시작했다는 귀띔도 없이 갑자기 미친 오르막을 오르게 만들고는 죽겠을 때가 되고서에야 '소조령 0km'라는 허무맹랑한 표지판이 반기니 참 지겹다. 이화령보다 더 싫다! 다행히 고통 끝에 소조령의 끝은 찾아왔고 이내 이화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과 다르게, 과장 없이 그야말로 일 미터도 자전거를 타고 오를 수 없었다... 걸어서 이화령에 오르자 여덟 시가 넘었다. 결국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는 데엔 실패하고 말았다. 이화령 휴게소에 들르는 데도... 이화령 휴게소의 인스턴트임이 분명한 우동이 꽤나 먹을만했는데, 이제 영영 먹을 일이 없으니 애석하다. 

어두워졌지만, 퇴근하는 휴게소 아저씨의 트럭 불빛을 따라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 이렇게 어두워지고 난 시각에도 이화령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주 미쳐 돌았구만. 그들에게 내가 올라가면서 받은 만큼의 "힘 내세요!"를 돌려주었다.


EfZUbhB.jpg


 위험한 내리막길은 끝나고, 초계국수 집 다음으로 삼았던 공략점인 문경 약돌한우 타운을 지나쳤다. 원래는 둘이 다니면서 하나씩 다 먹어보려 했는데... 아쉽다.

빠르게 문경온천이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사실 종합온천을 첫 여행인 2014년 이후로 가 보지 않아서 이번엔 꼭 가려 했는데... 결국 자전거 안전하게 보관+세탁기 쓰게 해 줌의 장점을 지닌 모텔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피자를 한 판 시킨다. 둘이 왔다면 이 피자나마 둘이 먹었을텐데... 음, 아니다. 아마 두 판을 시켰겠지. 밥 값을 아낄 일은 절대 없었겠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