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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꼬박 1시간을 로스팅한 끝에 약 300 kg 상당의 로스트 원두를 얻을 수 있었다. 환기시설이 우수한 탓인지 볶은 냄새가 잘 퍼지지는 않았다만, 마지막 한 웅큼 집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이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원두가 건조되기를 기다리고, 사흘동안 밀봉하면 판매용 원두가 준비된다. 물론 1층에 있는 로스터도 지금 당장은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다. 내년이 되거든 장식용으로 쓰거나 가게에서 치워야지. 아무튼, 이 원두를 전부 용기에 담아서 옮기면 오늘 지하실에서의 일은 끝이다. 이제 조금 쉬어도 되겠다… 싶은데, 이럴 시간이 없다. 빨리 오픈 준비를 해야지.

"도영 씨, 트로 말프루이지스(Tro malfluiĝis)! 어딜 갔다 왔어요!"

메리의 말대로, 이번엔 '너무 늦게 왔다'. 너무 늦어서인지 메리가 8시 50분이라며 일러준다. 오픈 까지는 10분 남았는데 말이지. 미안, 로스팅 하느라 지하실에 다녀왔거든. 어제 까지만 해도 지하실이 있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게 둘러댔는데 옆에서는 주변 청소를 하고 있던 나머지 3인방이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내가 비몽사몽으로 추가 커피를 볶고 있는 동안, 메리는 내가 어디엔가 박아두었던 블랙 보드를 꺼낸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던 백묵으로 손수 글씨를 쓴다. 눈을 씻고 그녀에게 다가가 보니, 내게는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다.

Kristnaska donacaro. nur 12 250 enoj! (Rezervo Akceptinta)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 단돈 12,250 엔! (예약 접수 중)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게 '오늘의 커피' 메뉴를 묻는다. '오늘의 커피'라 할 것 까지는 없고, 비인기 메뉴가 어떤 거냐면…. 맞다. 터키 커피. 메뉴판에는 걸려 있지만, 1주일에 겨우 한두잔 팔리는 거다. 그러자 메리는 곧바로 'Hodiaŭa kafo: La turka'로 받아 적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만 288엔으로 팔자.

그나저나, 메리 씨도 에스페란토 쓸 줄 알아요?

"예스, 미 레르니스 진 플리 안타우 올 덱 크빈 야로이."
(Jes, mi lernis ĝin pli antaŭ ol dek-kvin jaroj.)

15년 전에 배웠다는 메리 씨의 화답. 그러고 보니 나는 대충 7년 전에 배운 것 같은데 말이지. 그나저나 15년 전이면 대충 일곱살 때 배웠다는 얘기인데….

"사실 어렸을 때 '세계 대회'에 같이 갔었거든요."

세계 대회라면 보나마나 그걸 말하는 거다. 아무튼, 대회에 처음 간 것을 계기로 학습을 시작했다는 메리 란도 씨의 대답. 나도 한땐 가고 싶었지만, 자금 부담이 엄청나서 줄곧 포기하긴 했다. 혼자 가려면 대체 얼마를 내야 하는 건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했던 작년 대회는 하필 카페 일로 바빠서 못 갔고.

메리 씨한테 작년에 열렸던 대회에 갔는지를 물으려 했지만, 하필 영업이 시작되고, 손님이 온 탓에 그만두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온 거람. 아차! 밀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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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베논(Bonvenon)!

점장님과 조금 더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쳤다. 손님은 곧바로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였다. 오늘의 메뉴는 합의된 대로, 터키식 커피이다.

터키식 커피는 다른 커피들과는 추출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거치는 에스프레소나 룽고와는 달리, 얘는 전용 주전자인 제즈베에 가루를 넣고 팔팔 끓이는 방식이다. 인덕션이든 뭐든 필요하다. 그런데 점장님…. 점장… 님? 하필이면 점장님이 안 보이신다. 대체, 어디로 간 거람.

다행히 아메의 도움을 받아서 전기레인지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완전 가정용 레인지 아닌가 싶다.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으니 양해를 구해야 되겠고, 일단 밖은 추우니 안으로 들어오시라 해야지.

천천히 커피를 끓이고 있는 동안, 나는 에스페란토 노래를 하나 선곡했다. 대충 이거면 될 것 같은데.

※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는 매년 7월 26일 전후로 열리며, 2017년에는 서울에서 개최한 바 있다. 2018년 대회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2019년 대회는 핀란드의 라흐티, 2020년 대회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