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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느는 항상 스포를 하므니다


 사실 좀 지쳤었다. 건너편 꿈동산에서 도장 마냥 찍어내던 영화들. 자기중심적인 백만장자, 이기적 의사, 좀도둑이 영화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근본 없는 사명감을 장착하더니 지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한 마음 한 자리에 모이는 광경을 지켜보는 게. 그래서 좀 그리웠다. 싸구려 무게 잡기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 군데군데 엉뚱한 점이 살아 있는 영화. 물론 샘스파처럼 그 정도가 좀 과할지라도... 

 그런 점에서 베놈은 데드풀 이후로 유쾌한 히어로 영화에 목말랐던 나에게 알맞은 영화...

...가 될 뻔 했다. 좀 아쉽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래도 빌런 기반의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다보니 기존의 히어로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면이 있다. (적어도 영화 끝나기 20분 전까지는.) 일단 심비오트부터가 인류를 먹어치우겠다는 생각으로 기업 '라이프'를 역이용하여 지구에 왔고, 심비오트 중 하나인 베놈의 행동도 정의, 대의보다는 스스로의 생존과 무엇이든 먹어치우기로 귀결되며, 그동안의 점잔빼던 히어로 캐릭터들과는 다른 에디+베놈의 다소 난폭하고 어느정도 정신병자같은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등급 변화 탓인지, 아니면 이제와서 뒤늦게 MCU를 따라가 보겠다는 발악인지, 영화 끝나기 20분 전부터 베놈은 "네가 날 바꿨다"라는 느끼한 말과 함께 손바닥 뒤집듯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지구도 나름 아름다운 점이 있고, 파괴하는 꼴을 볼 수가 없다나? "나도 심비오트 세계에서는 루저이니, 여기서 인생 한 번 펴 봐야지!"라는 나름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이유를 이미 줘 놓고, 이렇게 심하게 비약해서 이제는 지구를 지키겠다고 하니 실소를 참기 어려웠다. 마치 라스트 제다이의 "그 키스" 장면과 비슷한, 도저히 이 영화를 좋게만 봐줄 수가 없게 만드는 다소 과한 비틀기가 아니었을까...

 또한 영화 마지막 20분, 주제를 "지구 지키기"로 급하게 선회한 결과 라이프의 사장 드레이크의 오만함, 에디의 (전) 연인과의 갈등 등 영화 안의 서브플롯들이 굉장히 빠르고 두루뭉술하게 사라져버리는 단점도 있었다. 좀 아쉽다. 삭제장면 탓인지...


 또한 이게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어도 평범히 중후하게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둘이서 콩트와 슬랩스틱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데, 이는 철지난 밈 남용이나 번역가의 소양에 따라 한국에서는 웃음포인트 자체가 날아가버릴 여지가 가득한 MCU와는 다른 면모가 있다. 비록 너무 힘을 준 건지 샘스파3을 보는 듯한 엉뚱함이 있지만, 적어도 영화 마지막 20분에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스토리보다는 덜 역겹다. 이런 유쾌함은 영화 곳곳에 퍼져있는 분량 괜찮고 시원시원한 액션과 섞여 "오~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고 생각할 뻔하게 해 준다.


 좀 정리가 안 된 면이 있지만, 그냥 귀찮아서 끝내자면... 사라진 40분이 아쉽긴 하지만 영화 내내 보여준 액션은 9월에 영화볼 게 없었던 내 갈증을 씻어주기에는 충분했고, 중국 자본인 텐센트 투자 영화 치고는 역겨운 중뽕 내지 강요된 PC가 함유된 부분도 없고, 스토리도 마지막 맥빠지는 순간을 제외하면 크게 불만인 부분은 없었고, 옛날 샘스파같이 군데군데 엉뚱한 매력이 살아있는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함. 

 그래서 좀 이상하지만, 난 오히려 되게 재밌게 봤음. 

다만 굳이 나같은 병신처럼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가려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난 달에 개봉했던 영화 '업그레이드'를 보기를 추천함. 정말 신기할 정도로 영화 내 중심요소나 중심 갈등이 비슷하고, 더 간략하고 깔끔하게, 더 재밌게 만들어진 영화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