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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 갖고 있는 걸로는 모자란다고요?"

네. 크리스마스 세트 때문에 지금 갖고 있는 로스터를 풀 가동시켜 봤거든요. 그런데도 하루에 100 킬로그램이 안 나옵디다. 이래 가지고서는 납기일 맞추기도 깜깜한데, 이거 어떡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리고 로스팅 이후의 추가적인 과정을 오늘의 당번, 쿠다라 군한테 설명해 주었다. 냉각에만 사흘 걸리는 걸 생각하면 사흘 안에 1톤을 팔아야 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되겠나, 초라해 빠진 3kg 로스터 가지고 어떻게 되겠냐고? 물론 리모델링 이전의 250g 로스터 보단 낫지만 말이다.

"아직 지하실은 안 가보신 거에요?"

지하실? 뭐요 그게? 먹는 거? 우걱우걱.

"진짜 몰랐어요?"

알 게 뭡니까. 여지껏 가게 1층에서만 일하다 보니까 다른 데는 전혀 모릅니다. 아침에 '크바르밀'만 주구장창 외쳤던 회의실도, 어제 면접이랍시고 갔던 게 처음이지 말입니다.

"그럼, 청소 마무리 도와주면 알려줄게요."

청소요? 까짓껏 뭐가 대수입니까. 하면 되고말고요. 그렇게 마무리를 도와주고 나서 걸레 등을 쿠다라 군이 알려 준 대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이제, 지하실이 어디인지 알려줄게요."

그렇게 안내를 받은 곳은, 늘상 익숙한 가게. 간판에는 민들레 그림과 함께 '테리토리오 데 레온토도'라 읽을 수 있는 글씨가 쓰여 있다. 물론 불은 꺼져 있으니 희미한 전등불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고. 그나저나, 지하실이라니 대체.

역시, 뒤쪽이었냐. 겨울날에 뜬금없는 공포영화 찍는 것 마냥, 나와 쿠다라 군은 손전등에 의지한 채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진짜 처음이에요?"

베레(Vere), 레알레(Reale). 진짜입니다. 그런데 이 으스스한 분위기는 왜인지 모르겠다. 테리토리오를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내려가는 곳. 그것도 2층도 아니고 지하라니 말이지. 하도 으스스하다 보니 쥐가 찍찍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이거 뭐 하나도 안 보이니 쥐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만.

지하까지 참 험난하게 내려갔다. 여기가 심연인가 싶었다. 쿠다라 군도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듯 여기저기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쿠다라 군이 스위치를 찾아 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지하실에는 3kg짜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규모의 커피 로스터가 있었다.

"참 나. 모르셨어요?"

미.네.코니스! (Mi ne konis!) 전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대체 이정도면 대체 얼마를 볶을 수 있는 거지? 쿠다라 군은 일단 용량 전혀 모르는 눈치이고. 어디 안내판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 보니 'MAX 120kg'이라 쓰여 있었다. 뭘로 봐도 엄청난 용량이다. 대체 얼마나 들어갈 수 있는 거람. 대충 한 포대가 150 파운드이니…. 망할 파운드 법.

어쨌든, 이 정도면 완벽하네요. 페르펙테(Perfek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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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라….

아메, 리카, 카노가 자고 있는 마당에, 나 혼자 옷방에 가서 베레모를 꺼내 보았다. 당연하지만 꼭지 달린 것이다. 아무튼 방금 꺼낸 빨간 베레모를 살짝 써 보았다. 거울 앞에 서니 은근 귀여워 보인다. 이대로면 카페 유니폼과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모자는 있나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비슷한 물건은 없었다. 이래서는 스타일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흐음…. 아무래도 나 혼자 써 보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일단 이 베레모는 다시 넣어 둬야 되겠다.

베레모를 다시 넣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깊은 밤, 10시 반이다. 아뿔싸, 늦잠 자면 안 되지. 불 끄고. 자자.

※ Mi ne konis[미 네 코:니스] : <문장> 난 몰랐습니다.
※ koni[코:니]: 알다
※ vere[베:레]: 진짜로
※ reale[레알:레]: 참말로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