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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데에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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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악! 늦잠 잤다!

정말이지 어젯밤엔 제대로 못 잤다. 미사키들의 도움을 받았다 쳐도, 김장 담그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 미사키와 얘기하느라 진작에 잤어야 했던 시간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기껏 청했던 잠마저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는 바람에 전혀 이루지 못했다. 7시간을 침대에 있었다만, 실제로 잔 건 겨우 4시간 정도 됐나 싶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거울을 바라봤을 때에는 거울 맞은 편에 내가 아닌 팬더가 있는 듯 싶었다. 망할 다크서클, 언제쯤 되어야 지워지려나.

시라기 씨의 도움으로 겨우 테리토리오에 출근하고 나서도 졸린 기색은 여전했다. 하마터먼 어린 애한테 일반 커피를 줄 뻔 했다. 안 그래도 애들은 카페인에 더욱 민감하다는데,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평일이라 손님이 없었다. 시라기 씨가 말하길, 전통적인 비수기라고. 하긴, 이 성에는 단풍나무나 은행나무 따윈 없으니까.

브레이크 타임에 와서야 겨우 비몽사몽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났다는 게 정확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집사가 테리토리오를 찾아왔다. 그 집사는 내 자리에 정중하게 앉더니, 이젤까지 펼쳐놓고선 무엇인가를 쓱쓱 그려가고 있었다. 장래희망이 화가인가. 호기심에 나는 바로 옆까지 접근해서 앉았다.

켁. 이건 네모로직(노노그램)이잖아. 이 집사 양반은 쓸데없이 고급지게 퍼즐을 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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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분신들의 피곤함까지 짊어진 채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잠자리는 여전히 거실에 있는지라 불편해 죽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운 게 언제더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김장'이란 것을 한 탓인지 온 몸이 아프다. 머리를 묶어야 하는데, 피곤해서 귀찮다. 대충 해야 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분신들 풀어놓고 자는 거였는데 말이지.

그런 쓸데없는 후회를 한 채 등교길에 올랐다. 등교길 마저 천근만근이다. 아직은 11월 초라서 빙판길도 아니건만, 나한테만은 엄청 잘 미끄러지는 빙판길이다. 이러다 추돌사고도 날 판… 결국 전봇대에 부딪혔다.
평상시에도 빗을 학교에 가져가는 일은 없다. 오늘도 그렇다. 때문에, 나는 무슨 파인애플만도 못한 산발을 온 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부끄럽다, 이거. 게다가 거울을 다시 바라보니, 이거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따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거, 도영 오빠가 보면 크게 웃을 것 같다.

'푸하하하하. 장군이다! 사쿠라다 미사키 장군!'

이러면서 차 한 잔 주고, 식기 전에 누구 부탁 들어달라 할 것 같다. 한 명으로 돌아갈 때 흥을 깼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만도 하다. 이런 놀림은 싫다. 손가락을 빗 삼아 대충 머리를 정리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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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젤을 받침대 삼아 퍼즐을 풀다니, 심해도 너무 심한 듯 했다. 그래도 열성을 다해 퍼즐을 '그리는' 것을 보자니, 정말로 그림 그리는 것만 같았다. 특히 멀리서나 정면에서 바라보면 더욱 그러리라. 한참을 집중하는 듯 나의 인기척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 해야 하나.

아니다. 내가 무시당하고 있는 듯한 생각은 집사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와장창 깨졌다. 집사는 소스라지게 놀라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저기, 괜찮아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만."

열심히 퍼즐을 그리느라 내가 있는 것도 몰랐단다. 하여튼, 못 말리는 집사다. 그나저나 왕궁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열 달 됐는걸요.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쿠다라 스자쿠입니다."

이도영입니다. 반가워요.

쿠다라 스자쿠(百済 朱雀), 이 집사의 이름이다. 시라기 씨와는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며, 나보다도 어려 보인다. 아무튼 옷에 붙은 먼지를 턴 쿠다라 군은 곧바로 자기 할 일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쿠다라 군의 '그림'을 바라보자니, 한 폭의 풍경화 탄생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단순한 숫자의 모음이었을 뿐인데, 그 숫자들이 얽혀서 전혀 다른 형태가 완성되고 있었다. 보아 하니 대충 6할 정도는 된 것 같다. 네모로직 치고는 꽤 큰 110×100 크기의 퍼즐이다. 이 정도면 하루 짬 내는 정도는 부족하겠다.

"오늘로 사흘 째 하고 있는 거에요. 이 퍼즐에."

이틀 뒤면 완성이라 운을 떼는 쿠다라 군이다. 근사할 명화가 완성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브레이크 타임이 거의 끝나갈 때 쯤, 쿠다라 군은 놓았던 이젤을 접고 자리를 떠났다. 나머지 자리는 다 닦아 놨으니, 쿠다라 군이 지나간 자리만 닦으면 되겠다. 이틀 뒤면 쿠다라 군의 명화 컬렉션의 한 점의 작품이 추가되겠지….

… 유레카! '그걸' 네모로직으로 재현해 보면 되겠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