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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도 돼."

퍼즐 맞추는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던 하루카가, 도영 오빠가 문을 열자 돌아왔다. 퍼즐 조각이 바람에 조금 흔들렸지만, 그럴 줄 알고 미리 투명 테이프로 고정해 둔 덕에 방해가 될 정도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가까이서 보기에는 불편한 감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강당의 2층으로 올라갔다. 강단 쪽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던 2층에 다가가자 사쿠라다 '미켈란젤로' 하루카가 그린 그림이 한 눈에 보인다.

"이건,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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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게 하루카가 '스스로 해낸' 거야.

그러자 하루카의 무릎에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그리고서 하루카는 눈물을 뺨 까지 흘려내고 있었다. 미사키가 울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이렇게 실컷 울 수 있을 때 울어야지, 지금이 아니면 어떻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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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처음은 태어났을 때요, 두 번째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요, 그리고 마지막을 나라를 잃었을 때란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거기까지다. 그래서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이럴 때에 울지 않으면 싸이코패스 아니던가? 제 아무리 냉혈한의 남자라도, 평생에 세 번은 울게 되어 있다. 태어났을 때엔 당연히 울고, 어려서도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면 울고,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돈 뜯기거나 지치거나… 아무튼 살면서 3번 이하로 울 수 있을만한 여건 자체가 안된다.

그냥 울 수 있을 때 실컷 울자. 놀라운 경치를 바라봤을 때나, 감동적인 영화를 봤을 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치욕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굳이 상황을 따질 필요도 없다. 스스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위대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 때 눈물을 흘리면 되는 거다.

다만, 울지 말아야 할 때는 그치자. 눈물은 감정이 그 '그릇'을 넘었을 때에만 나와야지, 지나친 눈물은 오히려 자신의 그릇이 작음을 알리는 꼴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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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혼자서 했다니, 믿겨지지 않는군요."

시라기 씨가 그림을 보고 던진 말이다. 하루카라서 가능한 거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어요.

"이게 될 줄이야."

미사키와 분신들 역시 넋을 놓고 그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믿어… 주셨군요."

응. 문제, 풀어줘서 고마워. 사쿠라다 하루카.

학생회장은 다음 수업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아깝다. 이름을 물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교장선생님 역시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우셨다.

미사키는 잠시 주머니에서 뭔가를 찾더니,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다. 슬슬 치워야 하니까 납득은 된다.

"잠깐만요. 아직 치우지 마시고요."

시라기 씨가 정리를 잠시 말리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찾아온 사람은, 방송국의 기자였다. 잠깐만. 나, 뉴스에 나오는 거지? 응?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