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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키의 말에 따라, 약속대로 미사키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들렀다. 집사부 직원이자 테리토리오의 점장으로서, 그리고 테리토리오 비번인 오늘은 카스텔투로의 팀장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시라기 씨의 도움으로 도착한 곳은 '왕립 오카 학원 고등학교'(王立 桜華学園 高等学校). 대놓고 '왕립'이라 했으니, 이 학교는 왕국의 재산이다. 엘리트…라 할 것 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여기에 오는 이유는 심플하다. 교무실에 사정해서 '사쿠라다 미사키'를 찾아 조퇴시키기. 끝.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 (사실은 내가 왕궁 직원 자격으로 왔다는, 그런 핑계같은 이유로) 교무실까지 무사히 입성했다. 어디 보자. 미사키의 반이 2학년 E반이던가. 절묘하게도 '희망', 에스페로(Espero)의 E이다. 어저면 사형(Execution)의 E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건 신경 끄고, 일단은 미사키를 데려오는 게 목표다.

"이거, '사쿠라다' … 그, '뭐시기 태스크 포스'의 팀장, '이도영' 님 아니십니까?"

'사쿠라다 로얄 패밀리 마인드 힐링 태스크 포스', 별칭 '레온토도 엔 카스텔투로'입니다만. 아무튼 오카 고등학교의 교감이신 이 선생님은 나보다는 훨씬 연세가 드신 분인데, 나한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신다.

"폐하한테서 익히 들었습니다. 사쿠라다 미사키를 회복시켰다면서요?"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그 미사키를 조퇴시켜야 할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대체, 무슨 일로?"

사쿠라다 하루카, 아시죠? 이번엔 그 하루카가 회복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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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E반, 사쿠라다. 사쿠라다 미사키 학생은 지금 즉시 교무실로 오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2학년 E반 사쿠라다 미사키 학생은 …'

"미사키는 여전히 바쁘단 말이야."

점심시간이라서 잠시 분신들을 풀어놓고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된 이상 분신들 회수하고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숙제를 제출해야 했지만, 수업이 오후에 있는 거라 별 수 없이 교무실에 바로 내 드려야 되겠다. 그리고 오늘은 학생회 회의도 있지만, 갑작스런 호출에 빠지는 수 밖에 없다.

그가 왔고, 때가 와서 그렇다. 도영 오빠가, 그리고 하루카가 퍼즐을 다 푸는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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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장을 풀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남은 장 수다. 얼핏 봐도 30장은 넘어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퍼즐 한 장을 풀고, 다음 장으로 넘겨보려 했다.

어? 이게 뭐지? 손가락이잖아. 확실히 뭔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른 퍼즐과 맞춰봐야 되는 것 같다.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다음 장을 풀어보았다. '시간' 개념은 잊은 지 오래라 일정 '간격'으로 퍼즐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보다는 확실히 '간격'이 짧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장의 퍼즐이 완성되었다. 이번엔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두 장을 맞춰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가리키는 모습. 뭔가 신비감이 든다. 아니, 기시감이 드는 것 같다. 흡사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깐,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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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여기 있자."

잠깐만요. 겨우 저를 집에 보내려고 조퇴시킨 거에요?

"그것보다는, 하루카 때문에. 분신들의 도움도 필요하고."

그리고는 편의점에서 사 온 빵을 권하는 도영 오빠. 저는 아까 점심 먹어서 괜찮아요. 그러자 도영 오빠는 우리 집 식탁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음료 없이 먹고 있는 게 불쌍해 보여서 내가 곧바로 우유를 갖다주었다. 도영 오빠는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빵을 입에 넣고 있었으니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이도영 팀장님."

도영 오빠를 부르는 집사 분. 도영 오빠가 '시라기 씨'라 부르는 사람이다. 시라기 씨는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바람 쐬겠다는 식으로 우리 집을 다시 나섰다.

시라기 씨가 나가자, 도영 오빠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식탁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인드풀니스를 다시 떠올렸다.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