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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사쿠라다 미사키', 시집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문학소녀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쉬면서 책을 읽으려고 일부러 찻집이나 카페 등을 찾아다닌다. 여기 '테리토리오 데 레온토도'를 찾은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집에서는 꽤 멀리 돌아서 와야 하지만, 그 만큼 찾을 가치는 있다. 그저 간판이 아름다워서 찾아온 것 뿐만 아니라, 수정과 같이 여기서만 찾을 수 있는 차가 즐비해서 그렇다.

아무튼, 오늘은 테리토리오에서 파는 또 하나의 메뉴를 시켰다. 재스민 차라고, 우울한 기분 풀어주는 데에는 최고다. 안 그래도 중3이라 고입 시험에 목을 매야 하는 처지, 이렇게라도 여유를 즐겨야지. 안 그러면 시험 날에 졸 수 있단 말이야. 그것도 중요하다는 고입 시험에.

테리토리오의 점장이자 바리스타이신 저 남자는,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뭐, 어때. 저 분은 테리토리오의 점장일 뿐만 아니라, 꽤나 이름 날리고 있는 '레온토도 엔 카스텔투로'의 팀장이기도 하지. 때 마침 최근 회복했던 하루카 님도 왔네.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책을 읽는 것 같고.

"저기, 뭐 읽고 있어?"

뜨악!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마터먼 의자에서 넘어질 뻔 했다. 아니, 이미 넘어졌다. 겨우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말을 건 여자 분을 응시했는데, 딱 봐도 사쿠라다 미사키 님, 왕족의 4녀이자 나와는 동명인이시다. 빨리 레깅스에 붙은 먼지를 털어야 되겠다. 아, 안녕하세요.

"당황하기는. 아무튼 정식으로 소개할게. 내 이름은…."

'사쿠라다 미사키' 님. 맞으시죠?

"으. 응."

나의 손을 잡아 준 미사키 님.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끊고 말았다. 이거 왕가 자제분 앞에서 이러면 큰일 나는데 말이지. 그렇게 입에 지퍼를 채운 듯 마냥 당황하고 있었는데

"미사키, 여기 재스민. 사쿠라다도 재스민 차, 맞지?"

테리토리오 점장 덕에 겨우 살았다. 내 꼴에 무덤덤하게 대응하고 있던 점장은 곧바로 카운터로 돌아가려 했다.

"오빠. 나하고 얘하고 이름이 같은데, 뭐라도 느꼈어?"

미사키 님이 점장에게 말을 걸어 봤지만, 점장은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며 곧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미사키 님은 당연하다는 듯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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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기하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상한 건 미사키 쪽이지. 물론 왕족 사쿠라다 미사키하고 평민 사쿠라다 미사키, 둘 다 말이다.

지금 쯤이면 다들 알고 있을 내 이름은 '이도영'. 동명인이라면 셀 수 없이 많다. 초등학교 때에는 나보다 한 살 위인 형이 동명인이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동명의 배우도 봤다. 요 전에는 인터넷 검색도 해 봤는데, 무슨 대기업 임원까지도 나오더라. 그러니까 '이도영' 이라는 이름 석자는 별로 특이한 이름이 아니다. 애초에 운명이란 건 이름으로 결정될 것도 아닌데, 왜 다들 이름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내란범이라거나 흉악한 살인마와 같은 이름이라면 필시 놀림감이 되니 재고해 봐야 하겠지만.

아무튼, 두 명의 미사키한테 차를 대접해 주고 난 곧바로 카운터로 돌아갔다. 하루카한테는 테리토리오 급인 488엔, 미사키(들) 한테는 각 388엔을 받으면 된다. 주문이 밀렸으니 동명인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해야 되겠다. 어디 보자, 핫초코 하나에 아메리카노 하나 있고, 롱 블랙도 하나 있다. 에스프레소 붓는 순서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에스프레소를 물 보다 먼저 부으면 아메리카노, 나중에 부으면 롱 블랙이니까.

※ 'Teritorio de Leontodo'는 에스페란토로 '민들레 영토'를 의미합니다.
※ 이 소설은 '성 아랫마을의 단델리온' 팬 픽션입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유전자' 따위가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존재의 연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