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우적..."


[3일차, 6월 26일 화요일 - 문경~대구]


 일어나기가 무섭게 피자에 손이 갔다. 작년과 다르게 1~2일차 주행량을 똑같이 130km씩 나눠서 부담이 그나마 덜했지만, 일정 변경 없이 약 150km를 그대로 달려야 하는 날이다. 위안을 삼자면, 전날 같은 애미없는 경사가 더는 없을 거라는 것. 모텔을 나오자 비가 오고 있었다. 이런 때야말로 자전거를 따로 보관해주는 모텔을 찾아 다행이구나 싶었다.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 몇 병과 커터칼 하나를 사 나왔다. 지도를 잘 못 읽는 탓인지 휴대폰을 볼 일이 많았는데, 나이텍스 장갑에 휴대폰 거치대에 작년 트라우마로 장만한 두꺼운 실리콘 케이스까지 있으니 터치하기가 어려운 탓으로, 커터칼로 빠르게 엄지~중지를 잘라내고 출발했다.

 작년과 똑같게, 곧 보이는 약수터는 어디서 작정하고 차 타고 오셔서 마치 삶의 목표 마냥 죽어라 물을 담는 어르신들에 가로막혀있었다. 이번엔 패스... 그 이후 보이는 갈림길에 작년 우회길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 길이 돌아와 있었다. 제법 표시를 엄청 정성들여 해 놨었길래 그대로 바뀌는 줄 알았는데. 좌우간 작년에 우회로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며 길 찾는데 고생을 좀 했기에 국군체육부대를 지나는 원래 길이 더 좋았다. 편안하고 빠르게 문경을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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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조심하시오! 길이 겁나 미끄럽다잉."

"예에."


 상주상풍교로 가는 길, 갑자기 미친듯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비는 헬멧의 통풍구를 파고들고, 내 머리의 땀을 씻어낸 비는 흙먼지와 함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시발짜

십몇 분 전 스쳐갔던 어르신들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거 대구까지 같이 가는 길에 길동무라도 하까?"

"하하하..."


 그 말이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시려는 듯 어르신들은 빠르게 나를 추월하였다. 아무리 클릿 사용자라도 그렇지, 정말 살 빼야겠다. 상풍교 인증부스에 도착하자, 어르신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담배가 쓰다...

비가 온 지 몇 분 안 됐는데도 자전거에 제법 흙이 많이 묻었다. 가져온 물로 적당히 흙먼지를 씻어내주고 양심판매대 돈통에 이천 원을 넣었다. "얼음물"은 전부 녹아있었지만 그래도 시원했다. 좌우간 살도 찌고 비도 오고 하는데 괜히 22% 경사에 도전했다가 추하게 죽을 것이 두려워 올해는 상풍교를 건너 우회로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간단한 산길과 농로로 이뤄진 아주 편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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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이 비건은 뭔... 무슨시발 아무데나 다 있냐 안돼 그렇겐 못해줘 야채안먹어 돌아가

 빠르게 자전거박물관에 도착했다. 작년엔 여길 지나고 공사중인 비포장로를 지나는 순간 펑크가 나서 고통받았던 기억이 있어 쉬면서 나름 점검을 해 보기로 했다. 타이어가 살짝 물렁물렁한 게 바람이 좀 빠졌나보다. 핸드펌프로 적당히 바람을 채우고 출발했다. 지난번 여행 때 아무 펌프나 싸게 샀다가 고배를 마셨는데, 이번엔 제대로 되는 펌프로 만족스럽게 바람을 채울 수 있었다. 지요핸드펌프 사랑해요 


 일 년 전 침울하게 걸어서 건넌 상주보를 빠르게 슝- 하고 건넜다. 비는 그쳤지만, 마치 농담처럼 또 진흙이 묻어있었다. 얼음물을 퍼붓긴 아까우니 자판기에 천원을 넣는다... 

넣는다... 


...왜 안 들어가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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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돈을 싫다 카노? 깔깔깔!"

 다행히 고통받는 모습을 보다 못한 인증센터 직원 분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비가 오거나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해서 돈이 물기를 먹으면 자판기에서 걸린다고 하는 것 같다. 무리 없이 구미에 도착했다. 네 차례 여행하면서 느끼지만 참 오싹한 도시다. 지금까지 여기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전거여행자는 단 한 명도 마주쳐본 적이 없다. 쉼 카페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는 풀 수 없는 미스테리 중 하나다.
아마도 모두 저 반도체공장에 갇혀 미래의 백혈병을 들이마시고 있는 거겠지. 비오는 날 혼자 통과하는 양평 터널들 다음으로 가장 무서운 지점 중 하나. 빠르게 탈출하고 나니 여전히 아무도 없긴 하지만 좀 건조하지 않은 공원 비스무레한 곳이 나왔다.
 칠곡보에 도착하고 나서야 브랜드 편의점과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아침 피자 이후로 물 빼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해냈다. 주저앉았다. 밀스 맛있더라. 왜 이딴 게 삼천 원인지와 이건 맛있으면서 왜 가루형태는 그렇게 맛이 없는지 영 모르겠는 점을 빼면 만족스러웠다.
 여섯 시가 좀 안 된 시간, 분발해서 달리면 강정고령보의 조명이 켜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오늘은 작년처럼 면상에 달라붙어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 떼도 없으니까...!
마침 운이 돕는지 고무호스가 연결된 수돗가가 있었다. 아이신나 자전거가깨끗해요 땅은 적당히 말랐고, 더 이상 자전거는 더러워지지 않았다. 아이신나
신나서 노래를 흥얼이며 페달을 밟았다. 아 섹스, 섹스, 섹스온더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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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에서 한 부부가 벤치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thiccboi™ 자전거 인생 처음으로 댄싱을 쳤다. 이화령을 내려올 때 빼고 가장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온몸이 땀 범벅이었고, 이미 강정고령보의 조명이 밝았고, 조온나 쪽팔렸지만... 무슨 밤 여덟 시인데 아침처럼 사진이 찍혔냐 

 대실역 쪽으로 들어와 대구 시내로 향했다. 뭔가 전통 비슷한 게 되고 있었는데, 대구에서 하루 쉬며 친구를 만나기 위해 좀 불편하더라도 모텔을 잡으려는 목적이었다.

용산역 근처 똑같은 모텔, 이틀을 묵기 위해 8만원을 내고 방에 들어왔다. 시간이 이틀이나 있으니까 오늘은 두꺼운 옷들만 빨아놔도 되겠지. 일단 뭣 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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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은 회덮밥과 물회. 노린 건 아니고 삘로 시킨 거였지만, 찾아보니까 완전 비건은 아니더라도 "페스코" 정도는 되는 우연히 나름 채식 식단이 되었다. 맛이 어떠냐, 이 비건 놈아. 

밥을 먹고, 다음날 더러워진 운동화를 대신해 잠깐 신을 샌들도 사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면도도 할 겸 면도기도 사러 홈플러스에 갔다. 여기만 뭔가 특이하게 "더 플러스 몰"이라 해서 좀더 삐까삐까번쩍하게 돼 있길래 그동안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뭐 없었다. 대체 뭐가 특별하길래 이름이 다른 거야. 



 어차피 내일은 노는 날이니까... 압박감 없이 오랜만에 새벽까지 늘어져 티비를 보다 스르륵 잠들었다. 

어차피 오늘은 노는 날이니까... 오랜만에 거의 열두 시가 될 즈음 일어나서 티비를 틀어놓고 만남 준비를 했다.



'따르르르르릉-'


"...여보세요?"

"50X호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퇴실 준비해주세요."

"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