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예요, 그게?"



[4일차, 6월 27일 수요일 - 대구에 머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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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이틀을 묵기로 하고 팔만 원을 냈는데... 아침 겸 점심을 대충 컵라면으로 때우며 전화로 실랑이를 계속했다. 

...그리고 자일리톨워터 절대 사먹지 마라 존나개맛없네 돈버림시발

"장부에 기록이 없어서요, 일단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20분 후...


'따르르르르릉-'

"...50X호인데요."

"아, 사장님이 인수인계를 깜박하셔서 그런 것 같네요. 이틀 숙박 맞으시고요, 편히 쉬세요."

"예에."

 다행히 오해를 풀었다. 전화를 붙잡고 있느라 약속 시간은 늦었지만... 반쯤 감긴 눈으로 샌들을 질질 끌며 내려와 아이스크림 한 국자를 손에 들고 모텔을 나섰다. 전날 비가 올 줄 알고 편의점에서 쌈빡한 우산을 하나 사 놨었는데 아주 쨍쨍했다. 하여간 돈낭비 씨발

자일리톨워터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구만! 그래도 자전거 탈 때 이렇게 내리쬐는 게 아니라는 게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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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은 시간, 중앙로 역 지하상가에 도착해 아무리 봐도 뚱뚱한 사람을 위한 건 아닌 듯한 구린 벤치에 앉았다. 다행히 친구놈도 비슷하게 늦어 무안하지 않게 만났다. 친구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와 대구의 지옥불을 쬐며 밥 먹을 곳을 찾았다. 참고로 천국은 구라 아니고 진짜로 있다고 하니까 웬만하면 다같이 회개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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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엔 대구에서 여행을 중단하고 며칠 눌러앉아 쉬면서 중식대잔치+치맥페스티벌 참가를 했었는데, 오늘은 딱 하루 만나는 거라 저녁에 영화만 보고 헤어지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점심은 돈까스. 꽤 싼 집으로 아는데 큰 사이즈 돈까스, 콜라 한 병, 맥주 작은 한 컵 해서 만원 조금 안 되게 사먹었다. 튀김도 바삭하게 씹혔고, 고기의 두께도 과하지 않았고, 요즘은 흔하긴 하지만 직접 갈 수 있는 참깨가 섞인 소스의 맛이 고소했다. 맥주는 국산이었지만.

 둘 다 딱히 할 일을 생각해내지 못한 만큼 바로 오락실로 갔다. 하키는 무승부, 뿌요뿌요는 패, 농구는 승... 전후로 자전거를 타는 몸인데 팔로 너무 무리한 것 같다.

오락실 3승부를 허무하게 무승부로 마친 후 시간이 되어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빌어먹을 스크린X 관이었는데, 너무 작은 관을 개조한 탓인지 저렇게 프로젝터가 반대쪽 화면을 가리는 우스운 일이 생기는 모습이다. 혹여나 스크린X 영화를 봤다면 화 좀 났을텐데 천만다행이었다.

 본 영화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1편에서 인상적으로 부분부분 사용되었던 영상미와 음향을 너무 영화 전반에 따라하는 듯한 느낌으로 남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이든 누구에게든 가차없었던 '시카리오'의 철학이 이번에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휘고 비틀리면서 살 사람 다 살려주는 물렁물렁함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근데 신기하게도 재미와 긴장감은 그대로였다. 나름 3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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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나서는 지하상가를 좀 걷다 밥을 먹었다. 웬만하면 다음엔 좀 더 새로운 놀 거리를 찾아놔야 하겠다... 4년동안 똑같은 곳만 보니 어쩔 수 없이 질려가나보다.

저녁은 살짝 애매했다. 라멘은 라면 나가사키짬뽕에 라면 대신 우동을 넣은 맛, 요리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저 밥은 무슨 떡지고 질척질척한 달달한 맛이었다. 으음. 다시 지하상가를 휘저으며 DVD 구경을 좀 하다가 더는 짜 낼 컨텐츠가 없음을 깨닫고 둘은 헤어졌다. 어흑 내일부터 다시 타야된다니 아이고안돼

시간은 흘러 다시 용산역, 모텔가 앞에 있는 만두 집이 나름 유명한 거라길래 사와 봤다. 원래 반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다음날 먹으려 했는데... 결국 다 삼켰다. 이래서 뚱보는...




[5일차, 6월 28일 목요일 - 대구~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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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때와 다르게 일어나자마자 바로 집어 먹을 음식이 없었다. 전날 친구를 만나 밖에서 사먹는 데 도취된 탓에 다음날 아침을 생각 안 했다. 싸구려 컵라면을 하나 데워 요기를 했다. 오늘부터 다시 달려야 한다니... 평소와 다르게 의욕이 없는 게 살이 찐 탓인 듯하다. 쏟아지는 비도 엄청나기도 했지만. 이제 하루에 100km씩만 가면 된다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비도 쏟아지고, 그동안 용산역에서 대실역, 또 강정고령보로 가서 자전거길에 재진입하는 게 좀 비효율적인 것 같기도 해서 네이버 지도로 나름의 지름길을 찾아 헤맸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웬 산업단지를 지나는 길이었는데, 길이 좆 같이 닦여있어서 수많은 깊은 물웅덩이를 하나하나 튀기며 주행해야 했다. 주차 좆 같이 한 차들은 덤. 거기에 자전거 출입금지된지 일 년 정도 된 것 같은 등산로를 네이버 지도가 가라고 염병해놓은 것 때문에 나름대로 길을 찾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결국은 더 늦어지고 말았다.

네이버 지도와 씨름한 덕에 겨우겨우 자전거 길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곧바로 작은 다리를 건너는 길이 나왔다. 코너 돌기엔 속도가 너무 빠르니 좀 줄여야...




...씨발 왜 브레이크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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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졌다. 그것도 클 대짜로 추하게... 속도가 너무 빠른데 코너에 절묘하게 철판 같은 게 대어져 있어 마찰력을 잃고 넘어진 듯하다. 일 분 정도 멍하니 누워있다 자전거를 세웠다.

일어나서 자세히 보니 뒷바퀴 브레이크를 드롭바가 닿을 정도로 꽉 잡았는데도 제동이 안 되고 있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결국 브레이크가 다 닳은 듯한데, 이걸 모르고 있었다가 화를 부른 듯하다. 보아하니 앞브레이크도 영 신통치 않은데, 오늘 좀 위험하겠는데...

 곧 달성보에 도착해 좀 나은 점심 식사를 했다. 작년과 똑같이, 지옥 대구를 빠르게 탈출하기 위해 대구 테크노폴리스 쪽 우회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나마 작년에 와 본 적이 있는 덕에 길을 좀 덜 잃었다. 다시 원 자전거길로 도착했는데, 무심사와 2차 우회로 사이의 갈림길 전에 이렇게 나무가 여럿 넘어져 있었다. 끔찍하다... 해가 갈 수록 길 관리가 처참하게 안 되는 게 피부로 느껴지다니. 다행히 자전거를 들고 넘어갈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합천창녕보,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우비 차림의 여행자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기다렸던 편의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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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이 없어졌다. 어찌 여행마다 완벽하지 않고 하나씩 이상한 점이 생기는 게 내 국종의 백미인 듯하다. 아이고시발세상에

처음 본 여행자와 무조건 동행하는 게 꼭 서로를 위한 길은 아닌듯해 반쯤 젖은 담배에 죽어라 불을 붙이며 떠나기를 기다렸다. 마침 수돗가에 양동이가 있어 물을 가득 채워 자전거에 끼얹었다. 아이깨끗해

 이제 남지읍 모텔가까지 남은 거리는 40키로 남짓, 닳아 빠진 브레이크 탓에 여행의 마지막 경사인 박진고개를 오르내릴 것이라는 게 신나지만은 않았다. 페달을 밟았다. 문득 페달을 밟으며 느껴지는 신기한 느낌. 뭔가 작년에도 느껴본 듯한 이 기분... 뒷바퀴가 미세하게 양옆으로 뒤틀리며 조심하지 않았다간 넘어질 것 같은 이 느낌.

혹시 뭐지? 길이 미끄러운가? 타이어가 젖었는가? 아니면 혹시. 혹시...


...튜브가 터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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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브가 터졌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게 패닉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리에 주저앉아 튜브를 고쳤다.

지요 패스트패치 사랑해요 여행자의 친구 지요 애용합시다 와 근데 되게 잘되더라 쪼만하고

 곧 박진고개를 올랐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벽에 남긴 글귀들을 시간과 이끼가 집어삼키는 모습을 매년 확인할 수 있는 신비한 장소다. 다만 시간이 갈 수록 여행자가 줄어드는 탓인지 예전보다는 덜했다. 사진의 '죽여줘' 등 작년의 흔적들이 별 상처 없이 남아있는 풍경이 보였다.

만약 O와 함께했다면 분명 여기에 뭔가 새겨 보자고 성화였을텐데... 개인적으론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지라 다시 빠르게 지나갔다. 앞브레이크만으로 불안불안한 제동을 거듭하며 박진고개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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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마주선 자전거길과 지름길 사이의 갈림길. 첫 번째 여행 이후로 계속 지름길을 이용해왔었는데, 이상하게 그 이유를 아무리 쥐어짜 내도 기억할 수 없었다. 한 번 가 볼까...? 어차피 거의 마지막 여행인데 어때?

 그리고 이유를 기억해냄과 함께 결론을 얻었다. 나는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미친 새끼들아, 등산로에다가 길닦아놓고 그걸 자전거도로라고 우기면 어떡해...?

마지막 10km를 진심으로 이화령보다도 좆같은 등산로에서 헤멘 후, 결국 남지읍에 도착했다. 보아하니 작년 여행하고 올해 여행 사이에 새 모텔이 하나 생겼나보던데, 거길 가 보기로 했다. 모텔 가격에 호텔 서비스라니... 개인적으론 굉장히 만족했다. 물론 방음은 모텔수준이긴 했지만, 나름 깨끗하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묵어 본 모텔 중에 가장 넓었다. 엘리베이터도 무슨 우주선마냥 요란하게 돼 있었고.

대충 바디워시에 헹군 물로 옷의 땟국물을 빼낸 후 편의점을 찾았다. 비에 젖은 담배도 새 것으로 바꾸고, 먹을 것도 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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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여행 때마다 전통처럼 꼭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모텔가 앞의 추레한 통닭 집이다. 옛날 통닭을 뜯으며 어른들은 얼굴이 붉어져라 신나게 떠들고, 아이들은 다른 의자에 모여 자기들끼리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이 꼭 어렸을 적을 생각나게 한다.

통닭이 뭐 그렇게 최고로 맛있는 건 아닌데... 묘사를 하자면 군대에서 치킨 비슷하게 튀겨주던 '닭 튀김'과 비슷하다. 물론 이건 간도 잘 돼 있고 한 마리채로 나오며, 옆에서 두 조각씩만 가져가라고 염병하며 닦달하는 취사병이 없다는 차이가 있다. 나름 맛있다.

싸구려 영화를 틀어놓고 통닭을 뜯다 잠들었다. 이제 다 끝나간다...


(다음 편에 계속)